세기박이야기

4-1. 이스라엘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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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애굽 근무 시절, 카이로에서 버스를 타고 이스라엘에 휴가차 다녀온 지 13년만에 다시 이스라엘 출장 기회가 돌아왔다. 감사실에 근무 중인 나에게 암스텔담무역관, 마드리드무역관 그리고 텔아비브무역관 정기감사 발령이 난 것이다. 알고 보니 전임자가 정기 감사 대상지에 텔아비브무역관을 올려 놓았던 것이다. 

120여 개나 되는 조직망 중에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본부에서는 보통 현장 감사를 진행한 후 감사보고서를 낸다. 이럴 때는 정밀한 감사가 이루어져야 하므로 업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정기 감사는 사고 예방을 위한 지도감사 성격이 강하므로 출장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

나는 감사를 진행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와 텔아비브무역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2년후 내가 이스라엘 근무를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감사를 마치고 돌아 올 때는 요세푸스 Josephus’라는 두꺼운 영어 책을 구해 왔는데, 이 책은 지금도 박물관 전시품을 해설하는데 요긴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사실 이스라엘에 가서 근무할 기회는 1995년에 한 번 있었다. 당시 요직에 근무하던 나는 근무지 선택에 우선권이 있었고, 텔아비브에 관장 자리가 났으니 좋은 찬스였다. 직장인이 자기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인데, 그 때 나는 이스라엘보다 뉴질랜드를 선택했다.

기독교박물관을 하겠다는 사람이 이스라엘이 아닌 뉴질랜드를 선택했을 때는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뉴질랜드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해 주셨다. 외국 근무라는 것은 유동적이어서 5-6년 후에 텔아비브 자리가 날 지 알기 어렵고, 자리가 나더라도 내 희망대로 가기가 쉽지 않은데 나는 불안한 마음없이 뉴질랜드를 택한 것이다.

이 책을 쓰면서 그때 왜 하나님이 나를 이스라엘로 보내지 않으셨는지 알게 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때 내가 이스라엘로 갔다면 결과가 어떠했을지 알게 된 것이다.

우선, 그때 이스라엘로 갔다면 성경 물건을 모으기가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는 세계 경기가 좋아서 이스라엘에는 성지 순례객이 넘쳐났고, 그들은 닥치는 대로 골동품과 기념품들을 사 갔다. 당연히 가격은 비쌌고, 돈이 있더라도 성경에 나오는 물건을 만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뉴질랜드와 국내 순환 근무를 마치고 6년후에 이스라엘에 갔을 때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소위 제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대봉기 사건)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 일으났으므로 우리 가족이 이스라엘에 도착한 지 몇 달 후부터 4년 내내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 동예루살렘 주권을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격렬하게 전쟁을 하였으므로 성지순례객은 자취를 감추었고, 이스라엘 경제는 파탄지경이었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위험하기는 하지만, 성경 물건을 수집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더구나 박물관에 전시할 물건들은 생필품이 아니므로 가격도 6년 전보다 훨씬 저렴하였다. 한정된 자금으로 물건을 수집해야 하는 나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일 수 없었다.

게다가 근무 마지막 2년 동안에는 이스라엘-이라크 전쟁까지 일어나 서민들은 먹고 살기조차 어려워졌다. 그들은 집안에 있는 유품들을 들고 나와 길거리에서 팔기도 했다. 그때 구입한 것 중에는 강보, 수금, 흉패, 홀로코스트 유물 등이 있다.

1995년에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이스라엘이 아닌 뉴질랜드로 보낸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당시 우리가 이스라엘로 갔다면 뉴질랜드의 기도 구역장은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 박물관 일을 돕고 있는 다섯째 딸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아내도 몸이 허약하여 예약전화를 받거나 꽃밭 가꾸는 일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그림은 크고도 세밀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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