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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르사(Tirz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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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식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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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르사 유적 6월6일 088 수정(700.jpg

디르사 전경. 지금은 폐허로만 남아 있으며, 사마리아와 비교하면 화려함도 없고, 크기도 10% 정도에 불과하다.

디르사(Tirzah)

- 사마리아로 천도하기 전의 타락했던 수도(首都) -

- 디르사의 뜻 : 아름다움 -


성경구절

ㅇ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내어 네게(여로보암) 주었거늘 ......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찌라 ...... 여로보암의 처가 일어나 디르사로 돌아가서 집 문지방에 이를 때에 아이가 죽은지라 [열왕기상 14장 8~17절]
ㅇ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십이 년 동안 왕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 년 동안 다스리니라 [열왕기상 16장 23절]

성지해설

북이스라엘의 첫 수도는 세겜이었으나(왕상 12장), 그후 디르사가 40년 동안 왕도(王都)가 되었다. 디르사 이후의 수도는 사마리아로서 오므리 왕이 사마리아 땅을 사서 도시를 만들고, 아들 아합에게 왕위를 넘겨 주었다.

디르사 유적 6월6일 091 수정(700.jpg
디르사는 북이스라엘 왕들의 악행이 배어 있는 타락의 도시이다. 초대 왕 여로보암은 아들이 병들자 부인을 변장시켜 실로의 아히야 선지자에게 보내었다. 그러나 우상숭배에 대한 책망과 함께 ‘네 발이 성에 들어갈 때에 아이가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
그 후에도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로 이어지는 모든 왕들이 디르사에서 악정(惡政)을 행하였다.

주변환경

성경학자들은 디르사가 족장들의 길 길목에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세겜으로 내려갈 때에 이곳을 통과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근에 있는 와디 파리아(Wadi el-Far'a, Nakhal Tirtsa)는 동남쪽으로 흘러 요단강으로 들어 가며, 지금도 물이 흐르므로 동네 아이들이 미역을 감는다.
디르사 유적 6월6일 087 수정(700.jpg

북쪽에서 내려올 경우 이 계곡을 지나면 오른쪽 비탈에 디르사 유적지가 있는데,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가나안시대부터 로마시대까지의 유적들이 발굴되었으며, 길이 200m, 폭 100m 정도의 평지이므로 가까이에 가서도 찾기가 쉽지 않다.

참고사항

세례요한은 살렘 근처 애논에서 세례를 준 일이 있으며(요 3:22~23), 와디 파리아를 애논으로 지목하는 자료가 있다(The Holy Land Satellite Atlas).
그리고 이곳을 기드온이 점령한 벧바라(삿7:24)로 보는 학자도 있으나, 올브라이트와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곳이 디르사이며, 북서쪽 코너에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확신한다.

<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성지편 www.segibak.or.kr >  

 

* 위의 내용은 세계기독교박물관(관장 김종식)이 성경 내용과 이스라엘 공식 자료들을 정리하고, 이스라엘에 살면서 수 차례 현장을 방문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교회 교육용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 상업용으로 무단 사용할 경우 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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