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식관장칼럼

만두와 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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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식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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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른이 될 때까지 만두를 본 일이 없었다. 그리고 순대라는 음식도 대나무 죽순으로 생각하다가 나중에 그것이 돼지 창자에 음식을 채워 넣은 것인 줄 알고는 저어기 실망한 적도 있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자라난 나로서는 이 두 가지 음식을 접할 기회가 없다가 경기도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만두를 알게 되었다. 당시 군종 사병이던 나는 간혹 민간인 교회에도 출석하였고, 나를 초청한 교인은 밀가루 반죽을 내밀면서 함께 송편(?)을 만들자고 했다. 어머니는 쌀가루로 송편을 만드셨는데, 경기도는 북한이 가까워 쌀이 귀하므로 밀가루로 송편을 만드는 줄 알았다. 그리고 송편 속에 넣는 것도 팥이 아니라 나물같은 것이었으므로 좀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분이 송편으로 국을 끓여 왔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침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지고 말았다. 입속에 통채로 넣은 송편 속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와 나는 그걸 뱉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만두국이 범보다 더 무서워졌다. 지금도 붕어빵은 즐겨 먹지만 만두 종류를 사 먹는 일은 하지 않는다.

순대는 만두보다 더 늦게 알게 된 음식이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 될 사람이 남대문시장에 가서 순대를 사 먹자고 해서 나는 주머니부터 만져 보았다. 초겨울에 죽순을 사 먹으려면 어쨌든 그게 비쌀텐데 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드디어 우리는 순대를 주문하였고, 아주머니는 '돼지피'를 서비스로 먼저 내어 주었다. 경상도 잔치집에서는 돼지 창자에 피를 넣고 삶은 후 그걸 총총 썰어 주었는데, 서울 '돼지피'는 속에 든 내용물이 좀 달랐다. 나는 비싼 죽순이 나오기 전에 어느 정도 배를 채워 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걸 먹고 있었다.

내가 돼지피 몇 조각을 먹는 동안 아내 될 사람은 그걸 다 먹더니 일어서고 있었다. 아직 죽순이 안 나왔는데 왜 일어서느냐고 묻자 죽순을 언제 주문했느냐고 도로 물어왔다. 그제사 나는 뭔가 잘 못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엉거주춤 따라 일어섰다.
아내는 지금도 가끔 그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놀리지만, 나는 아직도 그걸 왜 순대라고 부르는지 알지 못한다.

이스라엘에서 근무할 때, 입덧을 하는 자매가 순대를 그렇게 찾는다는 말이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돼지고기를 파는 곳이 없는데 어디서 순대를 구하랴.
나는 마침 두바이에 출장을 갔다가 한국식품점에서 냉동 순대를 발견하였다. 나로서는 무슨 일보다 순대를 공수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남대문시장에서 순대를 알게 된 덕분에 일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후 나는 그 자매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를 여러 차례 받았다.

하나님 말씀도 그 진수를 모르는 이에게는 뜨거운 송편이요, 마지 못해 먹는 돼지피와 같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입덧하는 자매가 순대를 갈구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읽는다. 내가 사는 길은 말씀의 진미를 모르는 사람들의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www.segibak.or.kr 김종식 장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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